조선시대 과거 시험(科擧試驗)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벼슬을 얻고 가문의 명예를 높일 수 있었지만, 시험은 매우 어렵고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실력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합격을 기원하는 다양한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이들은 운을 높이기 위한 부적을 사용하거나, 특정한 음식을 먹으며, 시험일에 특별한 행동을 피하는 등 여러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합격을 기원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수험생들이 과거 시험에서 합격하기 위해 했던 독특한 행동들을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합격을 기원하는 특별한 장소 방문 – 명당을 찾아가는 수험생들
조선시대 수험생들은 단순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시험 운을 높이기 위해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① 문묘(文廟)와 성균관에서의 기원
조선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문 기관이었던 **성균관(成均館)과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는 과거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습니다.
-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은 시험 전에 문묘에 들러 공자와 선현들에게 합격을 기원하는 절을 올렸으며, 시험을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축문을 올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특히 시험 전날에는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곤 했습니다.
② 합격 기원을 위한 산신각(山神閣) 방문
일부 수험생들은 유교적 전통과는 별개로, 민간신앙을 따라 산신(山神)에게 기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조선 후기에는 한양 근교의 관악산, 북한산, 삼각산 등의 산신각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수험생들이 많았으며, 산신령에게 정성스럽게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산신에게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나뭇잎을 태우거나, 작은 돌을 쌓아 올리는 의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 의식이 끝난 후에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려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처럼 시험 합격을 위해 특별한 장소를 방문하는 행동은 시험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수험생들의 마음가짐을 반영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시험 운을 높이는 특별한 음식 섭취 – 금기 음식과 길한 음식
조선시대 수험생들은 시험 전날과 시험 당일에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피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음식의 모양이나 이름이 시험 운과 연결된다고 믿었으며, 이에 따라 신중하게 식사를 조절했습니다.
① 피해야 할 금기 음식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시험장에서 답안을 작성하다가 '미끄러지는 것' 또는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따라서 미끄러움을 연상시키는 음식, 즉 미역국이나 묵(청포묵, 도토리묵) 같은 음식은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 또한 콩을 먹는 것도 피했는데, 콩은 "낙방(落榜, 시험에서 떨어짐)"과 발음이 비슷하여 시험을 망칠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② 시험 운을 높이는 길한 음식
반대로, 수험생들이 반드시 챙겨 먹었던 음식도 있었습니다.
- 찹쌀떡: 찰기가 있어 "시험에 착 달라붙는다(붙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음.
- 호박죽: 호박은 ‘크게 열리다’는 뜻을 담고 있어, 시험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는 의미로 해석됨.
- 달걀: 둥근 모양이 시험 성적이 완벽(滿點)하게 나온다는 의미를 상징하여 자주 먹음.
조선시대 수험생들은 이처럼 음식의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하며 식단을 조절하여 시험 운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3. 시험일에 피해야 할 행동과 징크스 –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다
시험 당일, 수험생들은 어떤 작은 실수라도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양한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①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서 주의할 점
수험생들은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불길한 징조가 보이면 매우 불안해했습니다.
- 까마귀 울음 소리를 들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겨, 길을 돌아가거나 잠시 멈춰 기다렸다가 이동했습니다.
- 길에서 넘어지는 것은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습니다.
-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이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② 시험장 안에서 지켜야 할 행동
시험장에 들어가면, 수험생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특정한 행동을 삼갔습니다.
- 시험 중에는 절대 한숨을 쉬지 않았는데, 이는 ‘실패에 대한 좌절감’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시험 답안을 쓸 때, 연필심(붓 끝)이 부러지면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 옆 수험생이 기침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것도 불길한 징조로 해석되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수험생들은 귀를 막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수험생들은 최대한 불길한 징조를 피하고, 시험에 대한 긍정적인 기운을 유지하려는 다양한 행동을 실천하였습니다.
4. 합격을 위해 활용한 부적과 기도 – 신령한 힘을 빌리다
조선시대 수험생들은 단순한 공부만으로는 합격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부적이나 기도를 통해 신령한 도움을 받으려는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① 시험 합격을 위한 부적 사용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다양한 종류의 부적을 사용했습니다.
- "급제부(及第符)": 과거 시험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부적으로, 주로 선비들이 책상이나 시험장에 몰래 넣어 두었습니다.
- "문운부(文運符)": 학문의 운이 열리도록 돕는 부적으로, 붉은 글씨로 쓰여 있으며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가슴에 품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② 절과 무당을 찾는 수험생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 중 일부는 절이나 무당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한양 근교의 사찰에서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 일부는 무당을 찾아가 합격 부적을 받거나, 특정한 의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맺음말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가문의 운명과 개인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합격을 기원했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기도하고, 운을 높이는 음식을 먹으며, 시험 당일의 행동을 철저히 관리하고, 부적과 기도를 활용하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수험생들이 "미역국을 피한다"거나 "찹쌀떡을 먹는다"는 풍습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수험생들이 가졌던 합격에 대한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적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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